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것은 '싸움 구경'이다. 특히 나와 관련 없는, 타인의 싸움은 격렬할수록 더욱 신나고 재미있다. 그런데 가장 친밀한 두 사람의 싸움을 스크린에 담아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이상한(?) 감독이 있다.
아내와 어머니, 피 터지는 고부갈등을 다룬 이 영화는 장르가 다큐멘터리인 만큼, 모든 게 '논픽션'이다.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누구도 드러내놓고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은 문제를, '가족'을 희생양 삼아 세상에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의 선호빈 감독을 만났다.
사실 고부갈등은 '집안일'이라는 이유로 술자리 안주거리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하찮은 이야기 같지만, 많은 여성들은 그동안 시댁에 가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됐다. 철석같이 믿었던, 정상의 남편마저 시댁 문턱을 넘는 순간 비정상이 돼버리는, 도무지 일상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시댁'이다.
그는 왜 자신의 아내 김진영과 어머니 고경숙의 싸움을, 날 것 그대로 스크린에 담을 생각을 했을까.
"2013년 8월 즈음부터 싸움이 강해졌어요. 처음엔 카메라로 찍힌 자기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찍기 시작했는데, 별로 효과를 못봤어요." 그러다 작업실의 동료 감독들이 이 영상을 보고 공감을 하더란다.
특히 유부남 감독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또 선 감독이 심리상담센터도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아주 전형적인 고부갈등'이라는 답을 들었다. "사실 그때 너무 큰 위안을 받았어요. 나만 불행한 게 아니구나,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라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선 감독은 '나의 불행을 팔아먹기로' 작정했다.
영화는 언뜻 보면 며느리의 역할만 강조하는 시어머니에 거칠게 저항하는 며느리의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그 진흙탕 속 한국 남성의 무기력함과 전통사회의 무관심을 잘 꼬집었다.
아내와 어머니가 각자의 입장을 피력하는 장면 사이에 아버지, 동생, 고모 등 온 가족을 취재한 인터뷰가 삽입되는데, 하나같이 '대충 중간에서 잘 봉합하라' '며느리는 원래 그런 것'이라 말했다.
"영화를 촬영하며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무력감과 패배감이었어요. 며느리만이 아닌, 인간 김진영으로 봐달라는, 생각해보면 너무 쉬운 일인데 그걸 다 이해하지 못했어요. (며느리의 역할을 강조하는) 기존의 보수적 가치도 뭔가 체계적 논리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다른 가족들을 찾아갔지만, '그냥 원래 그런 것'이라는 답만 돌아왔어요. 너무 허무했고 그걸 아내에게 강요할 수 없었어요." 그는 고부갈등에서 남자를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졌다'고 표현하는 것에도 고개를 저었다.
"제가 겪어보니 남편은 방관자가 아니에요. 이 싸움판의 '플레이어'에요. 그래서 너는 누구 편이냐는 물음에 저는 그냥 제 편이라고 말해요. 당사자로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주장하고 문제해결책을 함께 찾는 게 가장 빠른 해결법입니다."
사실 고부갈등은 현 세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게 감독이 영화를 찍으며 느낀 바다.
"영화가 입소문을 타면서, 서울노인영화제에서 상영요청이 들어왔어요. 처음엔 무서워(?) 주저했는데, 막상 상영을 하고 나니 할머니들이 내 손을 꼭 잡고 '좋은 영화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연신 하셨어요. 특히 진영이를 매우 통쾌해 하셨는데, 사실 우리 어머니 세대도, 그 할머니 세대에도 계속해서 당해왔던 일이라는 거예요. 아내도 '내가 엄청난 여성주의자도 아니고 대단한 일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반응이 센 것을 보면 한국의 여자들이 얼마나 불행하게 살고 있는 거냐'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선 감독은 젠더이슈를 여기서 놓지 않고, 좀 더 깊이 있게 제작해 볼 생각이다.
"B급 며느리는 내 가족이 나오는 거라 많이 순화시킨 면(?)이 있어요. 좀 더 날 것 그대로 깊게 파고들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더 바랄게 있다면, 공과금 안 밀리고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구요." 어리숙해 보이지만, 진중한 그의 눈빛에서 다음 영화를 기대케 한다.
/공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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